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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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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주기 앞둔
연평도 포격전
그날의 흔적은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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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3일 오전 10시쯤 인천 옹진군 연평도
안보교육장
.
교육장에 들어서자 샌드위치 패널 지붕이 내려 앉은
민가 세 채
가 눈에 들어왔다.
콘크리트 벽돌로 쌓은 벽은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다.
금이 간 틈 사이로는 철골 구조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집 옥상에는 깨진 장독대 파편이 흩어져 있었고,
한쪽엔 붉게 녹슨 액화석유가스(LPG) 통은 쓰러져 있었다.
2010년 11월23일
북한의 포탄이 직격한 민가의 잔해
다.
1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상처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벽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어요.
골절된 뼈에 핀을 박듯이
철제 빔을 설치해
벽이 버티고 있는 거예요.”
안칠성 문화관광해설사(64)는 철제 빔이
덧대어진 벽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같이 설명했다.
당시 북한은 연평도에
약 1시간 동안
170여발의 포탄
을 퍼부었다.
이곳을 포함해 면사무소 창고, 수협, 우체국 등
민간지역 7곳
에 포탄이 떨어졌다.
피해
주택은 400여 채
, 그중 52채는 전소되거나 붕괴됐다.
주민들은 빠르게 대피했지만
군인 2명
과
민간인 2명
이 숨졌고, 40여 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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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는 전체 면적의
80%에 군사 시설
이 들어서 있다.
군부대
는
북쪽
에 집중돼 있고,
주민
들은
남쪽
일부 지역에 모여 살아간다.
“연평도 집들은
옆집하고
처마가 붙어 있을 정도로
다닥다닥 모여 있어요.
마당도 없고,
집 앞이 바로 도로
죠.”
빽빽한 주거
구조탓에 포탄이 몇 발만 떨어져도
피해는
불덩어리처럼 커졌다.
당시 연평도 대부분 집은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지붕으로 덮여 있었고,
한 집에서 불이 나면 옆집으로 순식간에 번졌다.
하지만
민간 소방차
는
단
한 대
뿐이었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발생한 불길을 잡기엔
역부족
이었다.
지금도 마을 곳곳엔
그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붉은 벽돌 외벽
에
슬라브 지붕
을 얹은 집들이 눈에 띄는데,
모두 포탄으로 무너졌던 주택을 정부가
복구
한 것이다.
모양도 색도 비슷해
당시 피해를 입은 집
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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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포격
이 터졌을 당시 안칠성 문화관광해설사의 어머니는
연평도
에 있었다.
그는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
하고 있다.
“포격 소식을 듣고 어머니께 연락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가슴이 철렁
했어요. 한참 지나 연락이 닿았는데, 다행히
대피소에 계셨다
고 하셨죠.”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지금도
긴장 속에 일상을 살아간다
고 했다.
“지금도 포성 소리가 들리면 밥 먹다 말고 밖으로 나가요. 무슨 일인가 싶어서요.”
연평도에는
대피소가 10곳
있다.
비상식량, 취사실, 비상진료소, 와이파이까지 갖춰져 있어
일주일간
자급자족이 가능
하다.
평소엔 주민들이
사물놀이
연습하고
색소폰 연주
하는 동아리 모임 장소로 쓰인다.
“연평도 주민들의
가장 큰 소원
은
이 대피소가 평생 그냥 이렇게 있다가
쓸모 없어지는 거
예요.
우리
해병대, 해군 모든 군인을 믿어요.
지금까지도 잘 지켜주고 있고, 앞으로도
잘 지켜줄 거라 믿습니다
.”
< 섬, 하다 >
〈섬, 하다〉는 인천 바다 끝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연평도에서는 꽃게와 저어새, 해양쓰레기, 포격의 기억까지
섬의 하루를 눈으로 보고, 기록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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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기자
이나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