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


해녀가 잠수했다가 물에 떠오를 때, 숨을 내뱉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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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바다와 물범이 먼저 알아본 해녀

서쪽 가장 끝 섬, 백령도. 그 섬에 해녀와 해남이 총 5명이 있다. 해녀는 4명, 해남은 1명. 몇 년 전만 하더라도 20여 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많지 않은 해녀 중 단연 ‘상군 중의 상군’ 해녀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김호순 씨다.

해녀 김씨의 고향은 제주도다. 어렸을 때부터 그의 주변은 온통 바다였고, 물속에서 술래잡기하며 잠수를 익히다 해녀가 됐다.

“제주도에서 작업할 때 채취량 기준 어머님이 1등이면, 2등 해녀와 실력 차이가 크게 벌어져요. 어머님이 10개를 잡으면 다른 해녀는 3개밖에 못 잡았죠. 검은 잠수복 입고 수영하고 다니시는 거 보면 진짜 물개예요, 물개.” 윤씨는 장모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 김씨가 제주도에서 백령도로 오게 된 건 40여 년 전. 

“백령도에 물건이 많다”는 이야기에 터를 잡았다. 사람의 발길과 손길이 덜 닿은 덕분일까. 

백령도 바다에는 성게, 해삼, 전복, 보말, 가리비 등이 풍부하고, 냉수대 영향으로 다시마와 미역 같은 냉수성 식물도 많다. 

다시마 두께도 두꺼워 품질이 좋아 식감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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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에서 물질을 하다 겪은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몇 년 전 두무진항 인근에서 김씨는 평소처럼 잠수복을 입고 물속에서 성게와 보말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오리발을 잡는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점박이물범이었다고 한다.

“잠수복 색깔이 검정색이라 어머님을 물범들이 동료로 착각해 장난을 친 것 같아요.” 윤씨는 웃으며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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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바다, 이어가야 할 삶

어머니의 바다 생활은 가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010년 그의 막내딸 부부도 백령도로 입도했고, 바닷일을 배우던 막내사위는 10년 전 해남이 됐다. 백령도 유일한 해남이다.

윤씨는 처음에 장모를 따라다니며 배를 조종하는 선장 역할을 했다. 바다 위에서는 깊은 물속에 들어가 작업하는 장모의 공기 공급줄을 잡았고, 육지에서는 어머니가 따온 미역을 엮고 성게를 손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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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대를 이어 바다를 터전으로 사는 사람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바다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그대로지만, 바다는 점차 변화하고 있다.

“소라 종류만 봐도 백령도에는 삐뚤이소라가 많았는데 최근엔 보이지 않던 참소라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참소라는 뻘에서 사는 수산자원인데 이제 바다가 뻘로 덮였다는 뜻이죠. 남해 쪽에 사는 돔 종류도 한 마리씩 보이기 시작했고요.”


< 섬, 하다 > 

< 섬, 하다 >. 인천의 바다 끝에 사는 섬 주민들 이야기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선 북녘을 마주한 채 물질을 이어가는 해녀와 점박이물범, 그리고 주민들이 즐겨먹던 냉면까지 섬의 삶과 변화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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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수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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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