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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할머니가 남긴 따듯한 이야기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입구 언덕에 자리한 작은 비석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비석에는 ‘해병 할머니, 여기 잠들다. 대청부대 장병 일동’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해병 할머니’로 불린 고(故) 이선비 여사는 1970년대 대청도 사탄동(모래울동)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해병대원들과 인연을 쌓아온 분이다.

1974년 2월 15일 북한 함정의 함포 사격으로 어선 수원 32호가 침몰하고, 33호가 나포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청도에는 해병대가 주둔하게 됐다.

“그 시절 해병대들은 군복 하나로 훈련복과 작업복을 겸해 입다 보니 무릎이 다 헤진 채로 다니는 병사들도 많았어요.”
이 여사는 재봉틀로 군복을 직접 수선해 주고, 휴가를 앞둔 장병에게는 새 옷을 지어주기도 했다. 
야간 초소 근무를 나가는 병사에겐 라면 한 그릇을 끓여주고, 때론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가가 되기도 했다.


“내가 죽거든 손자 같은 해병들의 손에 묻히고 싶다”

이선비 여사의 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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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바위에 깃든 10억 년의 시간

트레킹을 시작한 지 30여분, 숨이 찰 무렵 조각바위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 양옆으로 높이 약 80m에 이르는 거대한 조각바위는 
오랜 풍화에 깎인 듯 날카롭고 건조한 질감을 드러냈고, 그 위에는 바람을 견딘 풀과 억새만이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다.

반면 절벽을 등진 뒤편 사면은 완만한 경사에 울창한 수풀과 나무가 자라고 있어 대조적인 풍경을 이뤘다.
“파도에 부딪혀서 조각조각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 모습 같다고 해서 조각바위라고 부릅니다.”



이곳에는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그가 태자 시절 계모의 모략으로 
대청도에 유배됐다는 것이다.

“순제 식솔들은 대청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궁궐을 짓고 머물렀고, 순제는 삼각산을 넘어 조각바위까지 걸어와 중국 본토를 바라보며 황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해요.”

그의 기도는 이뤄졌다. 
1년 5개월 만에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황제가 됐다.
조각바위 뒤편에 자리한 ‘삼각산’ 역시 
이 전설과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왕족의 직계가 머문 산을 ‘삼각산’이라 불렀어요. 순제가 이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이 산도 그렇게 불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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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하다 >

< 섬, 하다 >는 인천 바다 끝에 사는 섬 주민들 이야기다.

대청도와 소청도에서 10억 년 시간의 흔적이 새겨진 서풍받이와 나이테바위, 모래가 만든 해안사구, 117년간 불을 밝혀 온 소청등대까지 섬의 삶과 변화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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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 기자